내가 미쳤었지, 한 때 다 쓰지도 않을 거 비싼 리얼포스 87U를 두 대 씩이나 보유했던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악성 키보드 덕후인 내가 한두 달 전 새로 마련한 키보드가 있다. 바로 타이폰 이라는 국내 키보드 제조업체의 마르스 프로 Mk2 라는 기계식 키보드인데, 내가 구입한 것은 아마 이 모델의 두 번째 버전인 듯하다(이름이 마크 투 이니).
그런데 말입니다. 유저들로 부터 키보드 자체는 좋다는 평가가 압도적이지만서도 실제 사용하거나 직접 보기에는 너무 심심하지 않나. 하우징만 사하라 라는 이름의 색상(아이보리 보다 약간 진한)이고 나머지는 죄다 블랙이다. 내가 무슨 김종국도 아니고 거진 올블랙에 가까운 키보드를 좋다고 쓸 이유는 없다. 게다가 문자 각인은 측면에 있다. 블랙 키캡에 측각...내 취향은 아니다. 거기다 LED 투과하라고 키캡이 이중사출로 문자만 투명하게 되어있다. 앞으로 이 키보드 워리어의 훌륭한 무기가 되어 줄 친구인데 이렇게 어둡고 침침한 상태로 놔둘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말입니다. 키캡을 바꿔보기로 했다.
우선 그 비싸다는 SA 키캡을 준비했다. 모델명은 맥스키 파운데이션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키캡 교체를 할 시간이다. 집도는 키워인 내가 하겠다.
이런 경험이 없는 이들은 키캡 뺐다 꽂는 게 뭐 대수냐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게 생각 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또한 너무 단순작업이다. 인형 눈알 붙이는 걸 생각하면 된다. 너무 귀찮고 번거롭다. 그래서 보통은 청소 외 목적으로 키캡을 빼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엔 재밌는 키캡놀이를 해야 하니깐 귀찮더라도 뽑아보는 것이다.
반쯤 작업하고는 키보드의 몰골을 쳐다봤다. 나는 그냥 이렇게 써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단지 남들이 이렇게 쓰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들도 아셔야 할 게, 귀찮더라도 키캡 교체할 때는 전수교체하는 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최근들어 PC방이 기계식 키보드로 잠식되며 이제 기계식 키보드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제품이 되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축의 차이 정도만 알지, 키캡이 고유의 프로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생소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교체하는 맥스키 키캡도 SA라는 종류의 프로파일이고, 원래 마르스 프로에 장착되어 있던 키캡은 체리 프로파일 키캡이다. 그 밖에 국내에서 많이 쓰이는 프로파일은 OEM, DSA 등이 있다. 모두 키캡의 높이 구성이 조금씩 다르다.
이제 키캡을 모두 교체했다. 거뭇거뭇함 일색이었던 이전 보다 훠얼~씬 귀엽지 않은가? 에잇 참 이 키보드 녀석.
이상 키캡놀이 실황중계를 마친다. 아, 사실은 첨부터 이렇게 사용하고 있었는데 포스팅을 핑계로 한번 뒤집어 엎었다가 다시 장착하는 것이다. 키보드를 들었으면 뭐라도 써야지. 덕분에 키보드 청소도 하고 좋지만, 다시 체리 프로파일 키캡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듯하다. 지금 키캡의 도각거림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내 꺼라서 하는 말이지만(?) 이 흑축+SA키캡은 약간 반칙이 아닌가 싶다.